필터링 안되는 스팸이 많아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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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장 동안 가방에 카메라가 한번도 밖으로 못나왔다 …
사진도 역시 체력이 되야
너무 힘든 날들이였어
SEL28F20 vs SEL28F20+SEL075UWC (광각컨버터)
Nikon D810을 만족하면서 잘 쓰고 있었는데 A7R2로 기변하게된 결정적인 계기는
Back side illuminate FF CMOS sensor도 아닌 5축 손떨림 방지도 아닌 399개의 센서면 위상차 AF도 아닌
28mm + 광각컨버터 / 어안컨버터 였다.
과거 Nex7을 쓰던 시절에 16mm+광각 어안 컨버터를 너무 잘 사용해서 28mm와 컨버터 시스템을 발견하자마자
기변했다.
이 시스템을 쓰면 사실 장점이 별로 없다… 화질도 떨어지고 필터도 사용하지 못하고… 기타등등
과거에는 필터를 사용할 수 없어 16mm를 2대를 구입했었다. 아마 28mm도 한대 더 구입해서 하나는 uv필터를 사용하고
28mm로 쓰고 다른 하나는 컨버터를 위한 렌즈로 쓰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히 컨버터를 쓰면 화질은 떨어지지만 광각으로 갈수록 화질에 둔감하고 조리개를 마구 조일수 있는 풍경을
많이 촬영하여 크게 신경 안쓰게 된다.
그래도 궁금해서 검색해봐지만 자료가 없어, 직접 테스트 … 결론은 조리개 F4 ~ F11 정도만 사용하자
A7R2 고감도 노이즈 테스트
ISO 100
ISO 200
ISO 400
ISO 800
ISO 1600
ISO 3200
ISO 6400
ISO 12800
———-여기쯤… 마지노선이
ISO 25600
ISO 51200
ISO 102400
편도선 수술
어린 시절부터 편도가 유난히 커서 매년 한번씩은 응급실 신세를 졌었다.
40도까지 오르는 고열이 편도 때문이란 것과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른 목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부터는
언젠가 편도선 제거 수술을 하려고 마음 먹었었다.
2015년 부터 미뤄오던 수술을 2016년 3월에 하게 되었다.
0일차
3/15 입원
오후 입원후 자정부터 금식 시작 (전신마취 때문에 위를 비우는 것같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 입는 환자복
처음 꽂아보는 엄청 두꺼운 혈관 주사 … (18G) 이걸 꽂는 순간부터 그냥 환자가 되었다.
1일차
3/16 10시 수술 시작
당연히 전신마취도 처음. 혈관 주사를 타고 뭔가 차가운 것이 들어오더니 눈떠보니 수술끝
무통주사를 바로 달았기에 눈을 뜨자마자 수술부위 통증이 크게 심하진 않았다. 그런데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내 목에 뭐가 엄청 많이 껴 있어서 숨막히고 있다는걸 여기 수술방에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거칠게 숨을 쉬었다.
수술 시간은 1시간 정도 예상했으나 잦은 편도 염증으로 세포가 단단히 굳어 있었고 크기가 워낙 커서 쉬운
수술을 아니였다고…
그러면서 회복하면서 고생할 가능성이 많다는 말까지 수술을 담당했던 선생님이 붙여 주었다.
그냥 뭔가를 잘라냈기에 죽을듯 아플 것이라 생각했지만 당장 그렇지는 않았다.
실제 아픈 곳은 편도를 잘라낸 곳 보다는 기도 확보를 위해 삽관을 하면서 긁은 부분과 수 없이 많아진 구내염 이였다.
나중에 가글(목구명은 빼고 치아 근처만)을 통해 구내염을 어느정도 막을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첫 수술엔
입속에 각종 염증이 날 괴롭혔다.
수술당일 물 한모금 없이 금식. 원랜 바로 미음을 먹지만 난 좀 과한 수술이였으니…
2일차
3/17 아침은 힘들었다. 목이 너무 말라 있는데 물 한모금 마시질 못하니…
오전 담당의 진료와 함께 금식 해제
그런데 미음도 먹을 수가 없다… 첫 끼는 삼키는 동작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 스러웠다.
3일차
3/18 퇴원
오전 진료와 함께 퇴원해도 될 것 같다는 말에 그냥 잘 나아가는 구나 생각하고 퇴원…
하면서 무통 주사를 뺐다…
그리고 점심부터 밀려오는 고통이 참을 수가 없었다.
목+턱+귀+관자놀이까지 그냥 아프다 다 같이.
먹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였다. 아픈게 우선…
4~5일차
3/19 ~ 3/20
이 때부터 진통제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처방받은 약에서 진통제는 부루펜 x1 , 타이레놀ER x1 이 있었으나 끼니 사이에 약빨 떨어지는 시점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진통제를 섞어 먹기 시작했다. 타이레놀을 2알씩 먹는다던가 약먹는 시간과 시간 사이에
강력하다는 후기가 많은 진통제를 섞어 먹었다.
일과는 미음+약 … 아이스크림+약 … 우유+약… 속이 버틸리가 없었다.
모든 소화계통에서는 문제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다행히 먹은게 없으니 나올 것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통증을 참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6일차
3/21 불행의 전조
이제 아침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건조한 목상태와 떨어진 진통제 밤새 어떤 자세로 뒤척였느지에 따라
고통의 정도만 달라질 뿐이다.
수술후 4시간 이상 연속으로 잠들어 본적이 없다. 그 말은 가만히 버틸 수 있는 시간이 4시간이며 진통제가 효과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날도 아침 일찍 눈을 떳고 눈을 뜨자마자 물과 강력한 진통제를 먹고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몇시간 후 목이 너무 뜨겁다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눈을 떠 몸을 일으켰을 때 콧속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평소에 보던 코피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피의 근원지는 목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뱃속에서 피가 출렁 거렸다. 술먹은 다음날 술냄새가 속에서 올라오 듯 피 비린내를
느낄 수 있었다.
7일차
3/22 한번의 안도
외래 진료일이 되어 오전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출혈이 있었다고 말하고 내시경으로 목 상태를 봤다.
출혈은 멈췄으나 피딱지가 있어 피딱지를 제거하고 약으로 한번 지져야 될것 같다고 했다.
전기를 이용해 소작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으나 왜 약으로 지진다는 말을 쓰는지 궁금했지만
말 그대로 였다.
통증은 전기로 지지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위험이 많이 예상된것 치곤 이정도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이제 고비는 넘겼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8일차
3/23 방심의 시작
어느 정도 나았다는 생각에 좀 색다른 맛을 보고 싶었다. 회사에서는 미음대신 일반 죽(인스턴트 죽)을 먹기
시작했고 집에서는 우동을 식혀서 먹거나 인터넷에서 먹을만 하다고 했던 크리미를 먹었다.
우유에 방을 적셔 먹어 보기도 하고 뭔가 요리를 하려고 고구마 셀러드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담배까지…
약간 통증은 있지만 그냥 먹었다. 이미 고통은 익숙했으니
9일차
3/24 D-1
회사일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획복됐다는 생각에 조금씩 무리했던것 같다.
입을 벌리고 목을 관찰해 보니 잘 나아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전 까진 말하는게 힘들고 불편해 말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이 날은 충분히 말 할만 했고 또 캐나다와 잡혀있던
teleconference도 있었다. 그리고 그 미팅에서 한시간 반정도 계속 speaking… 그리고는 목이 너무 아팠다.
뭐 그러려니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와 인스턴트 죽과 크리미와 우유에 적신 빵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인스턴트 죽은 꿀호박죽… 보통의 죽보다 유난히 많이 아팠지만 그냥 참고 삼켰다.
그리고 전자담배도…
10일차
3/25 출혈
역시나 일찍 일어났다. 외래 진료일이라 거울을 보고 목 상태를 확인했다.
그런데 지난번 출혈 부위가 아닌 반대편에서 핏망울이 보였다. 얼음물을 이용해 가글을 하면서 목을 관찰하니
처음 핏망울이 약간의 출혈이 되더니 나중에는 입속을 피로 뒤덮을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얼음 찜질과 가글을 동원했지만… 내가 막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출혈은 심해져 피가 목뒤로 넘어가고 이 피는 목구멍에서 굳어지고 굳어진 피를 다시 토해내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가보면 그냥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피를 반복적으로 토해냈다.
진료시간 맞췄다간 큰일날것 같아 바로 병원으로 출발… “피를 너무 많이 토해 운전하다 쓰러지면 어떻하지?”
걱정을 가지고 병원에 도착했다.
주차와 동시에 차 앞에 우웩… 진료실 올라가면서 화단에 우웩…
진료실에서 바로 상황의 시급성을 알리고 들어갔더니 의사샘은 바로 소작기를 들고 지져야 겠다고 했다.
그리고 국소 마취를 하고 지지기 시작… 입에서는 연기가 올라오고 동시에 피를 토하는 상황
정말 최악의 고통의 시간을 보냈으나 결론은 소작으로는 지혈조차 불가능하고 넘어가는 피 때문에 생기는 구역질
그리고 너무 깊은 수술 부위를 건드림에 따른 구역질로 치료가 불가능.
선생님이 어제 마지막 식사가 언제인지 물어보길래 ‘전신마취 재수술!’이란 단어가 자동으로 떠올랐다.
수술 동의서를 바로 작성하고 와이프를 호출하고 병원 복도에서 쉴세없이 피를 토하면서 수술방이 잡히길
기다리는 시간은, 다시는 격고 싶지 않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이 왜 내가 지금 배가 부르지? 뱃속이 다 피라면 피를 얼마나 흘린걸까…
무사하려나…
수술이 잡히고 옷을 갈아입고 팔뚝엔 역시나 굵은 18G 바늘을 꽂고 수술실로…
수술실에 누워서 마취가 되기 전까지 끊임없이 피를 토하며 수술에 필요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재수술…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1시간 정도 지난 뒤였다. 숨쉬기는 여전히 힘들었고. 목은 말할 수 없는 답답함에
말 한마디 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해야할 말이 었었다… 속이 너무 안좋아요…’ 화장실을’
그렇게 전신마취에서 눈을 뜨자마자 병상에 앉아 병실로 옮겨졌고 그리고 화장실로 옮겨졌다.
병실에 누워 있으니 좀 이상했다. 첫 수술과는 너무 다른 입속 느낌. 뭔가 이상한 것들이 목구멍 뒤에 있는
느낌이 있었고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다.
편도 수술은 편도를 잘라내고 수술 부위를 소작하여 지혈을 한다. 그래서 수술 부위가 오픈된 상태로
보이게 되는데 2차 수술은 이 오픈된 수술 부위에 지혈 거즈를 대고 실로 꾀멘 것이다.
그런데 이 땐 이렇게 수술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실과 거즈 때문에 구역질이 이어졌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거기에 더해 뱃속에서 피 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어
구역질은 점점 심해졌다. 그래도 토해낼 순 없었다.
왜나면 정말 제대로 토하면 수술 부위가 터질 것이라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숨만 어떻게든 쉬고 있자는 생각으로 하루를 버텼다 당연히 금식, 물한모금 없음.
12일차
3/26 조심조심
정말 모든 것을 조심했다. 이런 수술을 3번씩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무조건 버텼다. 목을 간지럽히는
실과 거즈는 양옆으로 살살 밀어내고 숨을 쉬고 침을 삼키면 다시 목을 간지럽히고 … 계속 이런 과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재수술 이후 침대엔 눕지 않았다. 잠도 앉아서 잤다.
누워 있으면 왠지 머리에 혈압이 높아질것 같고 출혈의 위험도 높을 것 같았다.
사실 목젓이 부워 있어서 제대로 누울수도 없다.
13일차
3/27 다시 안정기
구역질도 익숙해 졌고 통증도 익숙해 졌다. 뭐 아직 무통주사를 달고 있었으니 버틸만해 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 구역질이 사라진 이유는 실로 꼬맨 것들이 다 터져버렸고 지혈 거즈는 다
먹어버렸다…
뭐 꼬맨 것은 터질 것을 초기부터 예상했었다. 단지 지혈을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 이였다.
네이버에서 찾을 수 있는 편도선 수술 후기에는 이런식의 꼬매는 수술은 없었다.
내가 유별난 것인지 관리를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완전 회복 되기 전까지 우유,
아이스크림, 물, 미음 4가지만 먹으리라 마음먹었다. 정말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14일차~16일차
3/28~3/30
다시 통증은 줄어 들었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젠 좀 알 것 같다 몇일내에 고비가 올것 같다는 것을…
그리고 그땐 정말 조심해야 겠다.
회사에 입사하고 지금까지 신혼여행을 빼면 1주일을 쉬어본적이 없었다. 쉬고 있으면 뭔가 불안하고
그래서 하루는 나갔었는데 이번엔 2주를 쉰다. 물론 이런 식으로는 다시는 쉬고 싶진 않다.
아직 회복전이라 끝난 건 아니지면 기억이 남아 있을 때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기록해 둔다.
혹시 다른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수술 후 1주일 시점에 정말 조심할 수 있도록…